파리에서 에이미와 헝데부(Rendez-vous)
'헤밍웨이의 파리의 축제' 1921년-1926년
“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된다, 어떤모습으로 변하든, 파리를 평생 사랑한다. 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덕분일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 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바로 내게 그랬던 것 처럼.” - 헤밍웨이 1950년 인터뷰
<파리에서 날마다 축제 (A moveable Feast) > 헤밍웨이 저서
“파리는 오래된 도시였고 우리는 너무 젊었으며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단순한 것은 없었다. 갑자기 생긴 돈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받으며 곁에 잠들어 있는 한사람의 고른 숨소리마저도..”
“가난한 사람도 잘 지 낼수 있고, 글도 쓸 수있는 파리 같은 도시에서 이 처럼 새로운 작품의 세계를 마음껏 엿볼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엄청난 보물을 선물로 받은 것과 같다.”
“글을 쓰고 나면, 마치 사랑을 나누고 난 것 처럼 언제나 공허하고 슬프면서 행복했다.”
1920년 파리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과거에 볼수 없었던 평화롭고 문화의 전성기인 벨 에포크( La belle epoque) 말 그대로 좋은 시절을 맞이한다. 그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서양과 미국,영국에서 엄격했던 문학,예술의 엄격한 규제를 벗어나 예술 활동이 자유로운 아름다운 도시 파리로 모여들게 되었다.
20대 무명작가 헤밍웨이도 1921년 부터 1926년까지 아내 해들리와 파리에서 생활을 시작하며 다정한 친구 였던 작가 스콧 피츠 제랄드, 연상의 여성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 에반 쉬프먼, 시인 애지라 파운드등 문학과 예술계 독특한 인맥을 맺으며 파리의 얘기는 끝을 모르며 그의 인생과 문학에 영원히 기억될 축제의 시간들을 맞이했다.
그가 사후 3년이 지난 1964년 처음 출판된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기록된 그의 젊은날의 파리에서의 경험은 일상속의 특별한 감정인 것이다.
[생 미셜 광장의 멋진 카페들] 많은 예술가들의 만남속에 풍자, 해학, 끝없는 토론, 헤밍웨이 특유의 절제된 유머와 표현은 그의 문학의 일부가 되었고 멋진 생 제르맹 거리의 카페와 생 미셜 광장은 그의 보금 자리가 되었다.
[센느강가의 셰익스피어 책방(Shakespeare and Company)] 가난했던 시절 보증금은 언제든 생기면 내고 언제든 그 가 책을 빌려 볼수있었던 책 대여점은 그의 친구 였다.
[센 강변의 사람들] 센 강에서는 물고기를 낚는 낚시꾼들의 풍경과 싼 값으로 책을 구할수 있었던 노점 책방의 풍경이 그에겐 인상 깊었다.
[배고픔은 훌륭한 훈련이자 교훈이다] 그는 가난했던 파리 시절에 텅 빈 배의 배고픔으로 어떻게 세잔이 풍경화를 그렸는지 동감할수 있었고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세잔이 다른 면에서 허기를 느꼈을 것이라 생각 하게 되었다.
[거투루드 스타인의 가르침] 그녀는 항상 헤밍웨이의 작품을 냉정하게 평했다 ‘좋지만 전시할수 없는 글’ ‘말투의 문제로 아무 의미없는 짓’ ‘잘못된 것이고 바보 같은짓’ 그를 향한 질책의 평 이라도 그에겐 젊은시절 좋은 기억으로 회상되었다.
그의 일생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는 1899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적인 의사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활동적인 젊은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18년 적십자의 일원으로 이태리 북부의 호사루타 전선에 자원하여 부상을 입고 그 후 특파원의 자격으로 파리로 건너와 수 년 간 생활했고 1920년대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의 영향을 받고 1926년 첫 소설인 <<해는 떠오른다>>를 출판하고 스페인 내전에 참가 후 내전을 바탕으로 1940년 <<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를 발표, 1952년 <<노인과 바다>>를 출판하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실제적인 묘사와 실속,절제된 표현 방식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20세기 소설에 큰 영향을 미치며,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배고픈 시절, 형식에 규제되어 있지 않은 파리의 자유 속 에서 그는 더 많은 고뇌와 그의 작품과 인생의 갈등을 느꼈고,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파리와 시대의 서글픔이 그의 번민이 되고, 그것은 그의 잊지 못할 젊은날의 축제가 된것이다.
파리에서 에이미 리 기자 leeinparis@iclou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