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사설에 대하여

제목 : 언론사 사설에 대하여... 2012-08-19 01:56:04  

  이름 : New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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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사설은 과거의 딱딱한 문어체나 ‘3·1독립선언문’과 같은 雄辯調·美文調는 줄어들고 톡톡 튀는 제목을 口語體로 달아 독자의 관심을 끌려는 노력이 현저하다. 보다 간결하고, 보다 평이하고, 보다 경쾌하고, 보다 생동감 있고, 보다 직소적(直訴的) 자유로운 내용과 형식, 그것이 요즘 사설이 추구하는 지배적 양상이다. 


모임 ‘社’자와 말씀 ‘說’자를 조합한 ‘社說’의 뜻은 ‘신문사가 하는 말’이다. 신문사는 사회공기여서 격이 낮은 말을 해선 안 된다. 말의 실수가 없고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오판하거나 치우치지 말고 균형 잡힌 판단을 하여 점잔하고 신뢰할 내용이어야 한다. 사설은 개인의 말이 아니라 신문사 전체의 말이라는 이유에서다. 서둘러 앞서가고 지레짐작 판단하지 말고 실없는 말은 금물이다. 정치인의 舌禍와도 같이 차라리 짤망정 싱거운 농담을 하는 등 초싹대고 경망스러운 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상스럽지 않고 양반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말이 있다. 얼어 죽어도 곁불은 안 쬔다는 뜻이다. 물에 빠져도 그냥 죽거나 배를 곯아 죽더라도 체신 머리 없는 짓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설이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고 좋아도 팔팔뛰지 않는, 소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 좋아도 점잖고 슬퍼도 참고 굶어 죽더라도 학처럼 고고한 체면을 지키라는 것이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희로애락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아 감정의 기복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공석에서 취할 태도이며 점잖은 양반관습이다. 禮記나 孝經의 가르침이며 內訓은 조신한 양반 댁 규수와 처자의 언행관습에 대해 담담한 여인의 도를 말하고 있다. 신문사의 사설은 이런 기조를 계승해 왔다. 


세월이 변하여 다문화·다인종시대를 지나 지구가 한 마을이다. 반상의 차별이 심한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화시대를 지나 민주화시대다. 또 내 손안에 세상을 다 들고 다니는 첨단 정보화시대를 넘어 이제 곧 우주정복 시대에 들어설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을 날고 우주를 날아다니며 세계 공통어에 목매일 필요가 없어져 우주에 가득 찬 천상의 주파수로 대화하는 세월도 올 것이다. 육체의 세대가 소멸된 듯 영혼의 시대로 갈 모양이다. 이런 다양성과 시공초월성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신문도 달라지는 현실을 눈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제 사설도 달라져야 한다. 


구시대의 사설을 ‘理性的’ 사설이라 한다면 현대의 사설은 ‘感性的’으로 간다. 이제는 컴맹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I·T정보화 시대가 열렸다. 제왕적 군림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그 벽이 무너졌다. 축약성 한문 사설이 아닌 친근하고 편안해 인터넷 시대에 맞는 사설, 할 말 다 하면서도 법관의 판결문처럼 냉정함 보다는 다정다감 격의 없는 논조로 가는 것이 시대에 맞는 사설이라는데 동의하는 독자가 늘고 있다. 사설개혁이야 말로 국민이 부여한 언론사의 책무라고 보아 기존의 사설 틀을 깨고 일대 개혁을 제안한다. 


사설이란 간단히 말할 수는 없는 주제여서 쉽게 인터넷에 이렇게 물어보라 권한다. 사설은 신문사만이 가지고 있는 언론의 꽃이며 열매다.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그건 이렇고 저건 어떻다고 하는 사실을 찾아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보도·뉴스로서 이를 記事라 한다.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이런 기사 감을 찾는 일을 한다. 신문방송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독자나 청취자는 청와대나 정부부처를 찾아가고 국회로 직접 가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일이 묻고 설명을 들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면 국민의 권리는 줘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세상이 타의에 의해 돌아가도 객관적·주관적 판단을 못하게 된다. 


방송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TV시대가 와서 눈으로 보기까지 한다. 문제는 TV시대가 오자 百聞이 不如一見까지는 효과 만점인데 라디오방송에서 열개를 했다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TV편성체계라는 것이 다. 보도는 양이 넘치는데 논평·해설은 거의 전멸되어 일반 국민이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TV의 문제다. 이를 보완한다고 심야·100분 등의 토론도 가지고 초청인사와 대담도 하지만 비율상 5%도 안 되어 절대 부족으로 국민의 공정한 판단보다는 일방 주입식 교화가 되어 중요한 것은 숨기고 알리지 않아 국민은 눈뜬 봉사가 돼도 모른 척, 옳은 척 하는 편중언론경향과 권력의 도구화경향이 문제다. 


정확한 근거는 조사·연구 자료가 없어 약할지 모르나 TV의 논설은 5%대 미만, 라디오방송의 논설은 10%라고 한다면 신문의 논설은 분명 이를 웃돈다는 사실이다. 12면·16면을 발행하는 지방 신문들도 반드시 사설만큼은 꼭 배정하고 있다. 오피니언 논설이 차지하는 비중은(신문의 경우) 광고지면을 빼고 보도(뉴스)대비 20%를 상회한다고 보아도 된다. 


신문의 지면은 갈수록 논설분야를 늘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와 TV는 오피니언이 줄어들고 있는 편이라거나 힘이 센 TV방송사의 경우에는 점점 없애는 추세로 가면서 오락위주·볼거리·먹을거리·놀거리·의상·전시와 같은 방향으로 늘어나는 추세가 도를 넘고 있다.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1-TV의 경우도 심야토론은 토론이고 언론사(KBS)의 사설이라고 보아도 되는 논평은 아침 6시20분대에 달랑 5분간 해설위원이 나와 막걸리 젓가락으로 찍어 맛만 보는 정도 말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신문과 TV의 논설비중에서 TV는 없애는 추세이나 신문은 점점 늘려가는 추세인데 존재 이유가 국민을 위한 것이 언론의 본분이라면 TV가 권력의 입맛만 맞춘다는 억울한 말 듣지 않으려면 할 말을 바르게 열심히 균형 잡힌 논설 쪽으로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듣고 판단할 언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충족된다.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주제)이 있다. 초미의 관심사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 사설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무어라고 하는가의 내용이다. 내용이 건실하되 국익중심·국민중심·서민과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선택(주제)하여 강자보다 약자를 보듬는 말을 해야 한다. 또 대통령과 집권층은 애국자고 야당과 비판하는 이들은 반동·빨갱이·적 패당으로 단정하는 정치적 편향은 절대 금물이다. 대통령도 잘잘못이 있고 비판자세력도 잘하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라는 전제아래 좌·우 보수·진보의 의견차에 대하여는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인격살인 성 논조는 백번 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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