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균의 현지르포] 체코 프라하

 

 

 

21세기에 만나는 중세 도시 '프라하'

 

체코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기자에게는 프라하의 봄이다. 이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을 칭한다. 1956년 소련내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있은 후에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점차 고조되어 갔다. 그러나 당시 정권이 이를 외면했고 이에 반발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자유를 위해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했다. 이 물결에 밀려 마침내 19681월 보수파가 물러나고 개혁파가 정권을 잡게 된다.

 

이들 개혁파는 자유화를 위한 정책을 펼쳤으며 국민은 프라하의 봄이라 하여 공산체제로부터의 탈바꿈을 환영했다. 그러나 소련은 이러한 체코사태가 동유럽 공산국가들에게 영향이 미칠거라 우려해 이 체제변화를 마르크스, 레닌주의로부터 이탈했다는 명분으로 체코를 무력 침공했다.

 

1968820일 소련군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5개국 약 20만 명의 군인을 동원, 이 자유화운동을 저지하고 개혁파 주도자 및 추종자 50여만명을 숙청했다.

 

각종 세파를 겪은 체코는 1989년 무혈혁명에 의해 공산정권이 붕괴됐고 동유럽이 개방되자 유럽 최대의 관광도시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1992년에는 구시가를 중심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이면에 중후하게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가 바로 프라하다. 북방의 로마, 유럽의 심장, 흰 탑의 황금 도시, 유럽의 음악원 등 프라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은 화려하다. 모차르트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다는 도시,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마력의 도시 프라하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어느 시점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다.

 

프랑스에서 리스한 푸조를 운전하고 온 기자에게는 체코 프라하의 첫인상은 딱딱한 중세 유럽의 느낌이였다. 좁은 길과 트램이 얼키고 설켜 있는 이 도시에서 운전하기가 쉽질 않아서 인것 같다. 이미 인터넷으로 예약한 유스호스텔을 찾기 위해 도심을 몇바퀴 돌았다. 겨우 찾은 숙소는 가장 복잡한 시내 중심가에 있었고 게다가 주차장도 없었다. 사설 주차장의 주차료는 아주 비쌌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숙소 옆 도로 공영주차장의 표지판을 보니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는 무료였다.

 

차를 전후좌우로 넣다뺏다하기를 몇번, 주차할 자리가 나왔다. 오후 6시쯤 자동주차기에 3시간만큼의 동전을 넣으니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주차할 수 있는 주차권이 나왔다. 주차문제가 해결되자 마음이 한껏 편해 졌다. 마음이 바뀌었다. 프라하는 시내 관광지가 밀집돼 있고 대중교통편이 편리하여 대부분 걸어서 다닐 수 있다. 한 여행객을 이처럼 온전히 품어 주는 도시가 또 있을까. 좁고 오밀조밀한 골목을 걷고 있다 보면, 프라하의 영혼이 느껴진다. 낯설고 먼 나라의 먼 도시, 그렇게 프라하에 빠질 수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검정색과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빛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야경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선술집에서 마시는 프라하의 하우스맥주는 이방인인 기자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이곳이 진정한 프라하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였다. 체코인 들은 맥주을 매우 좋아해 퇴근시 꼭 1잔의 맥주를 마신다고 한다.

 

또 체코에는 ‘1개의 언어를 하면 한번의 인생을 살고 2개의 언어를 하면 두번의 인생을 산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체코인들은 모국어인 체코어 외에 영어 등 두 개 내지 세 개의 언어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영어로의 의사 소통은 별 문제 없었다. 길모퉁이에서 문득 맞닥뜨릴 것 같은 느낌. 프라하는 여행자에겐 단순히 푸근한 고향 이상의 의미였다.

 

프라하는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도시다. 역사가 길면 사연도 많은 법이다. 프라하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이런 굴곡 많은 도시의 역사를 볼때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들 한다.

 

다양한 건축양식의 전시장이기도한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건축물들로 채워져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초··후기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아르누보 양식까지 그야말로 건축양식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카프카의 소설 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프라하 성은 궁과 교회, 성당 등이 어우러진 건물들의 집합체로 9세기경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일 낮 12시에 열리는 위병 교대식과 장엄한 성 비투스 성당은 여행객들에게 특히 시선을 끈다.

 

구시가 광장은 11세기 이래 시장이 들어섰던 삶의 터전이면서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화형, 1948년 공산주의 혁명의 발발 등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광장 주변에는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주거지와 구 시청, 틴 교회, 킨스키 궁전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다. 특히 구 시청 건물의 천문시계가 유명한데, 매 시 정각이 되면 시계 위의 조그만 창문에서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프라하는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음악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이 프라하 출신이며, 모차르트는 자기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곳이 프라하라고 말했다한다. 지금도 프라하 사람들의 음악사랑은 남다르다. 유명한 프라하의 봄은 사실 매년 5월에서 6월 사이에 열리는 체코 최대의 음악축제 이름이었다. 지금도 프라하의 봄축제는 계속되고 있으며, 봄이면 많은 이들이 이 축제를 보려고 프라하를 찾는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江)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프라하 신시가지의 중심지역인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 국립박물관 앞에 세워진 수호성인으로 신성시하는 성 바츨라프 기마상

 

프라하 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 전경

 

프라하 성이 보이는 블타바 강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는 프라하 성 입구

 

바츨라프 광장에 위치한 거대한 화약탑은 프라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분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프라하 광장 한가운데 자리잡은 종교개혁자 얀후스의 동상.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속 “소원의 벽”이 촬영됐던 곳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