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균의 현지르포] 인천

 

 

보는 사람마저 신이나는 월미도 디스코 팡팡

자장면의 발원지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역에서 내리면 누구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중국풍 거리가 있다. 우뚝 솟은 패루를 지나 계속 경사진 길을 3백여 미터를 걸으면 T자형으로 길이 양쪽으로 나뉘고 주변 상가는 온통 중국풍 일색이다.

 

붉은 색 간판과 홍등이 내걸리고, 음식점이나 진열된 상품들도 거의가 중국 일색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단장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화교들은 누구보다도 눈물겨운 세월을 보냈다.

 

인천 화교는 약 130년 전인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의 군인과 함께 온 40여명의 군역상인들이 이 땅에 정착하면서 그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들은 주로 푸젠성, 저장성 등 남방인들로 청나라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면서 조선 상인들과의 무역도 했다. 중국의 조계지가 생긴 후 중국의 건축 방식을 본뜬 건물이 많이 세워졌기에 이곳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차이나타운의 최초 형태이다.

 

1887년에는 산동 연태지방에 살던 왕씨와 강씨가 채소 종자를 들여와 채소 농사를 시작하니 당시 조선에서는 볼 수 없던 양파, 당근, 토마토 등이 모두 이들에 의해 전파됐다고 한다.

 

이렇게 번창 했던 세월도 한국 전쟁과 인천상륙작전으로 거의 파괴되고 만다. 영흥도 앞바다에 정박해 인천을 향한 함포사격을 정면으로 받은 곳이 지금의 차이나타운이다.

 

전쟁 후 화교 사회는 한국에서 외면을 당하기 시작한다. 화폐개혁으로 장롱 속 돈을 모두 신고해야 했고, 외국인 부동산 소유제한으로 그들이 반세기 이상 가꾸어온 주안, 용현동, 부평 일대의 황금 농장이 헐값에 판매되거나 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니 거의 반수 이상의 화교들이 이 땅을 떠난다. 더군다나 화교들만이 경영하던 중국 음식업계에 한국인들도 경영허가를 내주니 그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 차이나타운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급부상과 더불어 하나의 지구촌 시대를 맞이해 재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6·25전쟁 이후 급속도로 위축된 차이나타운은 인천이 대중국 교류의 중심도시로 성장하고 또한 21세기 지구촌의 세계화 바람에 힘입어 이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재조명되면서 인천의 새로운 문화와 관광 명소로 부상함에 따라 재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둘러보고 인천역에서 45번 버스를 타면 월미도 선착장근처에 있는 마이랜드에 가면 월미도 명물 디스코 팡팡의 DJ(최은용)뮤직아일랜드 오빠, 돌려!’를 보며 맘껏 웃을 수 있다.

 

귀에 달라붙는 걸쭉한 입담으로 이미 유명세를 치르며 재미가 압권인 디스코 팡팡. DJ의 재치 있는 농담과 독설이 첨가되어 직접 타는 사람들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폭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특히 치마를 입었거나 남자친구(여자친구)랑 같이 타는 커플은 DJ들의 집중 공격으로 거의 100%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다양한 놀이시설 만큼이나 다양한 표정들

 

 

자장면의 발원지 공화춘

 

 

삼국지 거리

 

 

차이나타운에는 맥아더 동상이 있는 인천자유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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