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균의 현지르포]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
- 오풍균의 현지르포
- 2014. 6. 21.
90여년간 한센가족 동반자로 함께 해
소록도(小鹿島)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는 섬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로, 섬의 이름은 그 형상이 작은(小) 사슴(鹿)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고흥 반도 끝의 녹동항에서 배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2009년 3월 3일에는 소록대교가 개통하여 육로로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기원은 구한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 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수용하기 위한 수용 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4대 원장 슈호 마사토(周防正秀)가 환자 처우에 불만을 품은 환자에게 살해당할 정도로 가혹한 학대를 당하였으며,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의 인권 침해와 불편을 당했다. 소록도 안에는 일제 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 갱생원 신사 등 일제 강점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건물과 표지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소록도 병원은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하여 환자 자녀들이 강제로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였으나, 이후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한센병 치료 및 연구, 요양 재생 등을 기본 사업으로 하는 요양 시설로 바뀌었다. 또한 1965년 부임한 한국인 원장으로부터 과일 농사, 가축 사육 등의 기술을 익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으며, 일부는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하여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완화하였다.
소록도는 섬의 전체가 국유지로 일반적인 주민은 거주하지 않으며 대부분 섬 주민은 국립 소록도 병원의 직원 및 이미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다. 또한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자이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병원의 직원등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 하는 관사지대(소록리 1번지)과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소록리 2번지)로 나뉘며 병사지대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 되어 있다.)
삼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관광지는 아니지만, 걸어다니면서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우체국 도양읍 소록지소 등 관공서와 천주교회, 개신교회, 원불교당 등의 종교 시설, 초등학교 분교 등 교육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2007년 9월 22일부터 5일간 고흥 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1,160m의 연육교 소록대교가 임시개통하여, 육상교통로가 열렸다. 2009년 3월 3일에 정식 개통하였다.
(글:워키백과)
전라도길 (시인 한하운)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다
낯선 친구 우리 만나면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가도 황톳길 숨막히는 더윗길
길을 가다 신발을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하나 없고
남은 두 개 발가락 잘릴 때까지
천리 먼 전라도 길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시인 한하운)
아버지가 문둥이 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어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국립소록도병원 전경(파노라마)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쓰여진 석단
소록도 중앙공원 내 위치한 천주교 공원의 예수그리스도상
소록도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는 문화재 해설사 (당시 악랄했던 일본인 수호원장 동상 앞에서)
소록도 천주교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