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균의 현지르포] 타이완속의 일본, 홍콩속의 영국, 마카오속의 포르투갈





한국의 근대 역사와 같이 한 ‘타이완(대만)’


<편집자 주>


타이완(대만臺灣, Taiwan), 홍콩(香港, Hong Kong), 마카오(澳門, Macau). 이들 3개 지역은 중국과 어떤 관계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홍콩과 마카오는 영국(1997년)과 포르투갈(1999년)로부터 주권을 반환 받은 후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의 원칙에 따라 특별행정구로 지위를 갖고 있는 중국의 영토이다. 그러나 타이완은 국제적 표기에 있어서는 ‘타이완’이라 사용하지 않고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 중국의 대북臺北시)’로 사용한다. 이 또한 하나의 중국을 표방한다는 중국의 영향으로 쓰이게 됐지만 타이완 사람들에게는 타이완은 하나의 국가 명칭이며 중국과는 별도의 주권국가인 것이다.    


먼저 방콕에서 출발해 타이완, 홍콩, 마카오 순으로 이들 지역의 역사와 현지 취재를 통해 타이완속의 일본, 홍콩속의 영국, 마카오속의 포르투갈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이들 3개 지명의 호칭을 중국발음을 기본으로 표기 했으며 흥미 있는 역사를 중심으로 글을 쓴다. 




타이완(대만臺灣, Taiwan)은 통상 명칭으로 이곳 타이완에서는 공식 국호를 중화민국(中華民國, Republic of China), 수도를 타이베이(대북臺北, Taipei)로 칭한다. 그러나 국제적인 지위가 막강해진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의 원칙으로 국제사회에서 대부분 중화 대북(中華 臺北, Chinese Taipei)이라 부른다. 따라서 타이완은 국제경기에서 국호와 국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국제적인 호칭에 따르게 되면 타이완은 중국에 있는 대북 특별구 정도이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대만 즉 타이완이라는 표기가 친숙하다.


타이완은 근대역사의 국제정치적인 면에 있어서 한국과 매우 친밀하고 유사한 관계에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이 패망하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 된 이데올로기 시대에 있어서 두 국가는 아시아에서 반공국가로써 쌍벽으로 이루며 각각 40만(타이완)명에서 60만(한국)명이 넘는 대군을 보유하고 국가 예산의 40%정도를 방위비에 투입하고 있던 국가였다. 


한국과 반공의 기치를 같이 했던 타이완은 80년대, 미국과 일본 세계 각국이 중국과 수교를 함에 따라 자유 진영의 우방을 모두 잃게 됐으며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만이 타이완과 수교를 유지해 왔었지만 거스를 수밖에 없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도 1992년 중국과 수교를 하게 되면서 국교가 단절 되게 됐다. 


물론 이듬해인 1993년 상호대표부를 두어 협력관계를 회복하기도 했지만 당시 타이완 사람들은 은혜를 저버린 배신행위라며 강한 반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한국은 공산주의였던 중국을 ‘중공’, 타이완을 ‘자유중국’으로 부르며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겐 타이완이 최고 우방국 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당시 UN한국임시위원회 7개국 중의 하나였던 타이완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함으로서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대만 주재 1호 외국 공관이 한국대사관이었을 정도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중국 하면 당연히 타이완을 가리켰다.


항일전쟁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는 한국의 형제국 이자 혈맹국 이었던 타이완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절대적인 후원 하에 중국을 대표해 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활동했다. 당시 미국이 공산주의 중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타이완은 한국전쟁 발발시 남한의 운명이 UN 안보리 이사회국에 의해 좌지우지 됐을 때(1950년 6월 27일), 안보리에서 미국의 참전 결의안을 적극지지 했으며 그 결과 7대1(찬성/ 미국 타이완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쿠바 에콰도르, 반대/유고슬라비아)로 한국전쟁의 참전을 결정지게 됐다.


타이완은 청일 전쟁 후 일본의 최초 해외 식민지가 되어 일본의 패망까지 약 50년간(1895~1945년) 주권을 잃었던 점도 우리와도 유사하다. 일본은 식민 통치기간 동안 타이완을 일본 본토에 대한 식량 공급기지 및 일본 공산품의 소비기지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1992년 이후 20여년 동안 국교가 단절된 양국은 상호대표부를 두어 선린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 일본문화 텃밭이라 불러도 될 대만에서는 다는 어느 나라보다도 한류열풍이 거세다.


오랫동안의 일본 식민지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일본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타이완에서 2000년대부터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문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증하게 된다.


타이완에서의 한류 열풍의 드라마 ‘가을동화’가 계기가 된 이후 대장금이 방영되면서 타이완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이 관심이 한국의 패션, 화장품, 한국어, 음식, 전자제품 등으로 확산되게 된다.


타이완은 남한의 약 3분의 1 크기로 아열대성 기후에 속해 날씨가 덥고 비가 많이 오며 바람이 많지만 연중 따뜻한 날씨를 유지하다. 또 치안이 안전하며 교통질서도 잘 지키며 친절하다.


타이완의 여행은 수도인 타이베이, 그중 전철이 있는 타이베이 역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타이완에는 한국의 인천공항격인 타오위안과 지하철 MRT와 연결되어 있는 쑹산 국제공항이 있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공항 Express Buses를 타고 가면 되는데 가는 싶은 목적지를 말하면 요금과 버스 번호를 알려 준다.


타이완은 지하철, 버스 등이 대중교통이 잘 발달 되어 있고 택시요금(기본요금 70위안 : 2,500원)도 저렴하다. 참고적으로 지하철에서는 음식이나 음료를 먹는 것이 허용이 안 되며 하늘색 의자는 일반석, 남색의자는 경로석으로 구분 돼있다.











<관련사진>아래 사이트의 '오풍균의 세상보기'에 관련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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